※ 대학내일20대연구소 호영성 수석연구원이 한국전력공사 사내보 ‘KEPCO 565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생각하는 진정한 워라밸 글. 호영성 대학내일20대연구소 수석연구원 윗세대가 밀레니얼 세대의 조직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할 키워드는 ‘워라밸’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정의 내리는 워라밸은 윗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또 합리적이다. 이제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단순한 사전적 의미를 넘어, 밀레니얼 세대가 워라밸을 통해 요구하는 새로운 조직문화를 이해해야 한다.워라밸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이 화두인 시대다. ‘주 52시간제도’가 시행되면서 논의가 더욱 가속화되긴 했지만, 20~30대의 젊은이들에게 ‘워라밸’이 직업이나 직장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된 것은 사실 그보다 더 오래된 일이다. 때문에 젊은 인재들을 많이 유치하고 관리하려는 기업들은 ‘워라밸’이 가능한 조직 문화를 만들고 정착시키기 위해 고민이 많다. 한국 경제 성장의 중추 역할을 했고, 회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을 다해 왔던 ‘윗세대’들은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이 들 것이다. ‘요즘 세대들, 너무 편하게만 살려고 하는 거 아니야?’, ‘워라밸이 좋은 건 알겠는데,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 속으로 한 번쯤, 아니 수백 번도 넘게 이런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오해가 있다. 윗세대와 다른 시대를 보낸 밀레니얼 세대 윗세대인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가 청년기를 보낸 1980년대는 경제성장률 연평균 10.4%로 고도성장을 하던 시기였다. 해외 수출이 늘어나며 성장을 거듭하는 회사가 많았고, 특히 중공업과 같은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갔다. 대학진학률은 36.4%(1985년 기준) 수준으로,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계층이 유망 직장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한 번 들어간 직장이 평생직장이기에 회사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자,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이 내가 성공하는 길이었다. ‘하면 된다’라는 구호가 실현될 수 있는 시절이었다. 밀레니얼 세대는 IMF 외환위기 이후 성인을 맞이하였고, 취업 시장에 나설 무렵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이했다.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2~3%대로, 한 번도 고도성장을 경험한 적이 없다. 취업 자체도 어려웠지만, 취업을 하더라도 5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일 정도로 일자리의 질과 안정성이 좋지 않았다. 반면, 이들은 ‘건국 이래 가장 높은 스펙을 갖춘 세대’라 불린다. 2005년 대학 진학률은 82.1%에 육박했다.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변별력이 없기 때문에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과 같은 ‘스펙’들이 필요했고, 어느새 인턴 경험, 수상 경험, 대외활동, 심지어 좋은 인상을 갖기 위한 ‘성형’까지 더해져 이른바 ‘9대 스펙’을 준비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취업 문을 뚫는다 해도, 산업구조가 급격하게 다변화하면서 신입사원조차 희망퇴직의 대상이 되는 사건들을 목격하거나, 기존의 유망 직종이 미래의 소멸 직종으로 변하는 모습도 보았다. ‘유튜버’처럼 자신이 가진 재능과 취미를 살려 성공하는 모습도 보았다. 평생직장도 평생 직업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회사의 미래가 나의 미래일리 없고, 회사의 성장이 나의 성장이 될 수 없다. 불확실한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각자도생’, 즉, 스스로의 길을 스스로 찾는 것뿐이다. 현재의 직업과 직장에 충성하고 안주하기보다는 언제든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언제든 다른 직장으로 옮길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그래서 내 삶에 여러 가지 대안을 찾고 만들어 두는 것이 이들에게는 현명하고 올바른 선택이다. ‘조직의 성과’가 아닌 ‘나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일하고, 퇴근 후 자기계발과 취미활동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에서 얼마나 인정받고 승진하느냐가 아니라, 퇴사할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들이 얼마나 있는가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워라밸에 담긴 다양한 의미와 과제들 워라밸은 그저 적당히 일하고 편히 쉬자는 뜻이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말하는 ‘워라밸’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업무의 합리성이다. 이 업무를 왜 하는지, 목적과 방향성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채 그저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혹은 ‘위에서 하라고 하니까’와 같은 이유로 업무를 하는 것에 대해 비합리적으로 시간을 쓴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뚜렷한 방향성, 구체적인 진행 가이드와 계획을 제시해 주기를 바란다. 초과 근무를 해야 한다면 이에 대한 설명이 더더욱 중요하다. 둘째, 업무의 효율성이다. 디지털에 익숙한 이들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협업툴을 사용한다. 가장 쉬운 예로, 전화나 구두 소통보다 이메일, 메신저와 같은 텍스트 소통이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텍스트는 기록이 남고, 물리적 제약 없이 실시간으로 내용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라고 인식한다. 셋째, 근무의 유연성이다. 업무 강도가 다소 센 경우 라도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유연 근무 제도, 근무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원격 근무 제도가 있는 경우 ‘워라밸’을 느끼기도 한다. 성과와 책임만 다한다면, 자리에 앉아 있길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 또한 워라밸을 좌우한다. 절대적인 근무 시간 자체가 아니라, 근무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워라밸을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넷째, 휴식의 자율성이다. 맡은 업무에 지장이 없는 한 제도적으로 보장된 휴가는 원할 때 자유롭게 쓸 수 있길 바라고, 하루 일과 중 소중한 휴식 시간인 점심시간 또한 반드시 팀원들과 함께하지 않고 혼자 자유롭게 보낼 수 있길 바란다. 다섯째, 퇴근 이후의 자유이다. 사무실에서 퇴근했지만 회식이 자주 있다거나 업무와 관련된 연락이 지속적으로 온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심리적으로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퇴근 이후 몸과 마음이 모두 온전히 업무로부터 분리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밀레니얼 세대에게 워라밸은 칼퇴근을 하겠다는 의미도, 적당히 대충 일하겠다는 의미도 아니다. 일할 때는 최대한 합리적으로, 효율적으로 일하고, 업무 이외의 시간에는 온전히 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달라진 것이다 어느 때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 디지털을 넘어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는 시대가 다가오고있다. 86세대가 지금까지 해 온 방식은 과거에는 유효했으나 앞으로는 더 이상 소를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은 방식일 수 있다. 86세대도, 밀레니얼 세대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밀레니얼 세대다. 이들이 조직에 잘 적응하고, 역량을 발휘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 줄 필요는 분명하다. 이것이 지금 시대에 조직과 리더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